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르웨이 침공 (문단 편집) ===== 서전 이후 ===== 리나운은 후미에 맞은 명중탄과 전방 주포탑이 파도를 뒤집어 쓸 정도로 황천이 심한 악천후로 인해 속력이 20노트로 감소하였던데가, 애초에 샤른호르스트급 전함들보다 속도도 더 느렸기 때문에 추격을 단념하게 되고, 리펄스와 합류한다. 그 직후 손상을 수리하기 위해 회항하여 1개월 후에 복귀하게 된다. 추격을 뿌리친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는 트론헤임의 아드미랄 히퍼와 합류하였으며, 세 척 모두 수리를 위해 회항하게 된다. 때문에 독일 해군은 노르웨이 전역에 전개한 주력함이 한 척도 없게 되어서, 2차 나르비크 해전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반면,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워스파이트는 [[지중해]]에 배치되어 있었으나 노르웨이에서 함대함 교전이 시작되자 4월 10일 부로 영국 본국 함대로 발령받으며 영국 본토로 귀환 명령을 받았고, 나르비크로 직행하여 4월 13일의 2차 나르비크 해전을 곧바로 진행하게 된다. [[고속전함]]의 전술, 전략적 가치를 보여준 사례중 하나다. 노르웨이 서부의 베르겐에도 독일군이 공격한 후에 영국군의 함대가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해당 항구에 있는 독일군 순양함의 숫자가 2척인지라 리이튼 제독 휘하에 있는 7척의 구축함만으로는 공격이 힘들었으며, 트론헤임 방면의 독일군에 대해서는 정보 부족까지 겹쳤다. 그래서 베르겐과 트론헤임에 대한 공격은 일시 중지되었다. 4월 9일 오전에는, 전술되었던 블뤼허 격침이 오슬로에서 터진다. 같은 날 영국 해군의 [[넬슨급 전함]] 로드니도 [[슈투카]]의 급강하 폭격을 맞았으나, 폭탄은 불발인 상태로 갑판을 뚫고 현측으로 빠져나갔다. 4월 9일 오후에는 수상함끼리의 전투보다는 항공대나 잠수함의 공격이 많았다. 독일군 항공대는 영국 해군에게 공습을 가해서 구축함 1척을 격침하고, 순양함 2척에게 지근탄을 투하해서 피해를 입혔다. 한편 영국 해군도 항공모함 퓨리어스가 [[함재기]]로 공습을 가해서 독일 순양함 [[쾨니히스베르크#s-4]]에게 3발의 폭탄을 명중시켜서 격침시켰다. 그리고 스카케락크 해협 인근에 출몰한 영국군 잠수함이 독일 순양함 칼스루헤를 크리스티안산 근방에서 격침시켰으며, 오슬로 방면에서 귀항하던 포켓전함 뤼초도 어뢰를 맞아서 키를 포함한 선체 후부가 날아가는 등 대파당했으나 침몰을 간신히 모면하고 귀환하는데 성공했다. 종합하자면 이 때까지의 해전은 영국 해군이 그 동안 헛발질한 것에 비하면 소득이 많았으며, 그러한 전술적 승리에 더해 주력함들을 지속적으로 투입하면서 노르웨이 근방의 제해권을 서서히 장악하던 상태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